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岡山歴史のまちしるべ多言語版(K48日蓮宗黄門山瑞雲寺)

[2023年2月24日]

ID:46961

Nichiren Sect Komonzan Zuiun-ji Temple

日莲宗黄门山瑞云寺

日蓮宗黃門山瑞雲寺

니치렌종 고몬잔 즈이운지 절

日蓮宗黄門山瑞雲寺

Nichiren Sect Komonzan Zuiun-ji Temple

 This old temple was founded in 1338, originally built on a plot of donated territory of 80 ken (approx. 145m) square with 300 koku.

 In 1602, Kobayakawa Hideaki, lord of the Okayama Domain, which ruled Bizen and Mimasaka provinces with its 510,000 koku, became ill and died, and the temple became his family’s temple and mausoleum. It was then named after his posthumous Buddhist name, changed from Ganmanzan Joju-ji Temple to Komonzan Zuiun-ji Temple.

 Hideaki was the adopted son of Toyotomi Hideyoshi and the nephew of Hideyoshi’s wife, Nene. At the Battle of Sekigahara, he was not part of the Western Army, but instead acted independently, leading a large army of 15,000 soldiers from Kashiwabara to Mt. Matsunoo. He was the greatest contributor to the victory of the Eastern Army (the Tokugawa side) by fighting fairly and squarely as the Eastern Army from the beginning. His actions were a far cry from the “betrayal” often described in military and historical novels. As a regent of the Okayama Domain, he made a number of achievements, such as the modernization and expansion of the castle and development of the town, implementation of land surveys, maintenance and rebuilding of temples and shrines, and the construction of the Hatsukabori outer moat.

 The temple buildings survived the air raids of Okayama in 1945, and the main hall, built in the Edo Period (1603-1867), still exists today. Inside the main hall there is a large, colored lion statue underneath the Shumidan (dais for a Buddhist image), a statue of Hideaki and his tomb tower on the right side, an altar enshrining Kato Kiyomasa on the left, and paintings of phoenixes and lions on the ceiling and sliding doors. The tiles for main ridge of the main hall’s roof were once gorgeous decorative tiles adorned with clouds and dragons, designs that are rare in this area, but they were replaced in 1998. The guest hall and temple kitchen were dozo-zukuri (earthen-wall building style) structures presumed to be from the Kamakura Period (1185-1333), but they were dismantled in 2019.

日莲宗黄门山瑞云寺

 是创建于历应元年(1338)的古刹,当时院内八十间长,四方捐建的寺领地占三百石。

 庆长7年(1602),备前国美作国五十一万石的冈山藩主小早川秀秋公病死之际,这里成了他的菩提寺庙所,名称也依其法号从愿满山成就寺改为黄门山瑞云寺。

 小早川秀秋公是丰臣秀吉的养子,其正室宁宁的侄子。关原之战中,不去隶属西军一派,而是单独行动,率领15,000人的大军布阵于柏原至松尾山一带。从一开始就以东军的身份光明磊落地作战,是引领东军(德川一派)取得胜利的最高功臣。而非军记物或历史小说中所描述的“叛徒”。身任冈山藩主执政期间,他推动冈山城市现代化扩建、修整扩建城下町、进行耕地总调查、修缮重建寺庙神社领地以及修筑二十日堀等,留下了众多治绩。

 寺庙的建筑在昭和20年(1945)的冈山空袭中幸免于战火,至今仍保留着江户期的本堂。其中须弥坛的下方是彩色的大狮子像,右侧是秀秋公像与墓塔,左侧祭祀着加藤清正公,还有凤凰、唐狮子的天井画及袄绘。本堂的大栋瓦是地方上少见的绘着云、龙图案的豪华饰瓦,但是从平成10年(1998)翻修屋顶后已不复存在。客殿与库里为土藏建筑,推测是镰仓时代的建筑,于令和元年(2019)被拆除。

日蓮宗黃門山瑞雲寺

 創建於暦應元年(1338),是當時寺内佔地八十間,四方捐獻寺領三百石的古剎。

 慶長7年(1602)備前國美作國五十一萬石的岡山藩主小早川秀秋公病死之際,這裡成了他的菩提寺廟所,並依其法號將願滿山成就寺改稱為黃門山瑞雲寺。

 小早川秀秋公為豐臣秀吉的養子,亦是其正室寧寧的侄子。在關原之戰中,未隸屬西軍一派,而是採取單獨行動率領15,000大軍從柏原前往松尾山佈陣。打從一開始就以東軍的身份光明磊落地作戰,是帶領東軍(德川一方)大舉獲勝的最大功臣。並非軍記物或歷史小說上所描述的「叛徒」。身為岡山藩主執政期間,對推動城町現代化、擴建,以及城下町的整備擴建、施行農地總調查、整備重建寺社領地、建設二十日堀等,留下眾多治績。

 寺廟的建築在昭和20年(1945)岡山空襲中倖免於戰火,至今仍保留著江戶時期的本堂。本堂中的須彌壇下是一尊彩色的大獅子像,右邊是秀秋公像及墓塔,左邊則祭祀著加藤清正公,還有鳳凰、唐獅子的天井畫及襖繪。本堂的大棟瓦原本是用當地罕見的雲、龍圖案的豪華飾瓦,但於平成10年(1998)翻修屋頂時而不復在。客殿及庫裡是土藏建築,推測為鎌倉時代之物,但已於令和元年(2019)被拆除。

니치렌종 고몬잔 즈이운지 절

 1338년에 창건되었으며 당시 경내 부지는 팔십간 사방 기부 사찰령 삼백석 부여(八十間四方寄附寺領三百石被付) 받은 고찰입니다.

 1602년 비젠국 미마사카국 51만석의 오카야마 번주인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공(小早川秀秋公)이 병사했을 때 보리사 사당이 되었으며 그 법호에서 이름을 따 간만잔 조주지 절에서 고몬잔 즈이운지 절(黄門山瑞雲寺)로 개칭되었습니다.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공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양자이며 정실 네네의 조카입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서군 일행에 속하지 않고 단독 행동을 취해 가시와바라(柏原)에서 마쓰노오야마(松尾山)로 15,000의 대군을 이끌고 포진했습니다. 처음부터 동군으로서 정정당당하게 싸워 동군(도쿠가와 측)을 승리로 이끈 최대 공로자입니다. 군기물, 역사소설에서 묘사되는 ‘배신자’가 아닙니다. 오카야마 재번 집정으로 성의 근대화 및 확장과 조카마치(성시:영주의 거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의 정비 확대, 토지 조사 시행, 사령(寺領) 정비 및 재건, 하쓰카보리 해자 건설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사찰 건물은 1945년 오카야마 공습에서 전쟁의 화를 면해 에도 시대(1603-1868)의 본당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안에는 수미단 아래에 채색된 커다란 사자상이 있으며 우측에 히데아키공 동상과 묘탑, 좌측에 가토 기요마사공(加藤清正公)이 모셔져 있고 봉황, 당사자가 그려진 천장화, 후스마에(맹장지 그림)이 있습니다. 본당의 용마루 기와는 지방에서 보기 드문 구름과 용을 본뜬 화려한 장식 기와였으나 1998년 지붕을 교체하며 사라졌습니다. 객전과 구리(부엌)는 도조즈쿠리(회벽 양식)로 가마쿠라 시대(1185-1333)에 지어진 건물로 추측되었으나 2019년에 해체되었습니다.

日蓮宗黄門山瑞雲寺

 暦応元年(1338)に創建され、当時の境内地は八十間四方寄附寺領三百石被付の 古刹です。

 慶長7年(1602)、備前国美作国五十一万石の岡山藩主・小早川秀秋公が病死した際、その菩提寺廟所となり、その法号に因み願満山成就寺より黄門山瑞雲寺と改称されました。

 小早川秀秋公は豊臣秀吉の養子で、正室・ねねの甥です。関ケ原の合戦では西軍一行には属さず、単独行動をとり柏原より松尾山へ15,000の大軍を率いて布陣しました。最初から東軍として正々堂々と戦い東軍(徳川方)を勝利に導いた最大の功労者です。軍記物、歴史小説に書かれている「裏切り」ではありません。岡山在藩の執政では城の近代化と拡張や城下町の整備拡大、総検地の施行、寺社領の整備と再建、 二十日堀の建設など、数々の治績を残しました。

 寺の建物は昭和20年(1945)の岡山空襲で戦火を免れ、江戸期の本堂が現存しています。中には須弥壇の下に彩色の大きな獅子像があり、右側に秀秋公像と墓塔、左側に加藤清正公が祀られ、鳳凰、唐獅子の天井画、襖絵があります。本堂の大棟瓦は地方稀に見る雲や龍が模された豪華な飾瓦でしたが、平成10年(1998)の葺き替えでなくなりました。客殿と庫裡は土蔵造りで鎌倉時代のものと推測されましたが、令和元年(2019)に解体され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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